[데일리벳] ‘공정무역 커피랄까요?’ 고양이병원 원장이 고양이혈액센터를 만든 이유는?

2024-08-07
조회수 219


지난 2022년 12월, 동물혈액은행에서 갑자기 혈액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동물용 혈액제제의 약사법상 관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부가 ‘전혈을 제외한 동물혈액제제는 동물용의약품(생물학제제)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혈(Whole Blood) 공급은 재개됐지만, 농축적혈구, 혈장제제 등은 여전히 동물병원에 공급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혈이 필요한 반려동물 환자는 상태가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일선 동물병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역 동물병원이 모인 단체채팅방에는 혈액을 구하는 글이 자주 올라오고, 심지어 병원에 공혈동물을 두는 등 오히려 음성화되고 있기까지 합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동물용의약품으로 분류된 농축적혈구, 혈장제제 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GMP 시설을 갖추고 품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동물혈액은행이 이를 준비하고 있지만, 시간도 걸릴뿐더러 공급 단가 상승으로 수혈 비용이 증가하면서 반려동물 보호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해외에도 없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과 ‘반려동물 보호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동물진료비 부가세 폐지, 진료비 사전게시제, 공시제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수혈이 필요한 노령동물·중증질환동물 보호자의 부담은 오히려 늘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공혈동물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상적으로, 헌혈을 하는 반려동물이 충분히 많다면, 공혈동물도 필요 없을 텐데요, 아직은 요원합니다. 특히, 헌혈견협회 등이 활동 중인 개와 달리 고양이의 경우 헌혈 문화는 상대적으로 많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고양이혈액센터’가 문을 열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운영을 시작한 백산동물병원이 고양이 헌혈·수혈만 하는 전문병원을 만든 것입니다.

데일리벳에서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한국고양이혈액센터(https://catblood.co.kr/)를 방문해 김형준 원장을 만나 고양이혈액센터를 왜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오랜만입니다 원장님. 국내 동물병원 중 최초로 ‘고양이병원 백산동물병원’에서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시작했던 게 기억납니다.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시작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이유는 B형 혈액형에 대한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B형 빈혈 환자는 많은데 헌혈을 해준 후보군은 너무 적었습니다.

원래 고양이 혈액형을 구분하는 방법이 혈청평판응집검사밖에 없었는데, 해외에서 고양이 혈액형 검사 키트가 수입되어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검사를 해봤더니, 역시 B형 고양이가 정말로 적더라고요. B형 고양이가 수혈이 필요할 때 수혈을 받지 못해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헌혈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고민을 시작했고, 2013년부터 준비해서 2015년에 처음 시작했습니다. 헌혈프로그램을 시작한 2015년에만 3마리의 B형 고양이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수혈을 받지 못해서 세상을 떠났었죠.



Q.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헌혈 및 수혈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매년 300케이스 이상 수혈을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헌혈 케이스는 1천 케이스가 넘고, 혈액형 검사도 1,800건 이상 수행했습니다.

고양이 혈액은 유통기한이 짧아서 혈액을 보관하고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혈이 필요한 환자가 생기면, 그때 (헌혈을 할 고양이)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헌혈을 위해 내원해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수혈을 받는 고양이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미리 혈액을 보관해도 될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은 B형 혈액도 어느 정도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Q. 고양이 헌혈, 수혈이 개에 비해 더 어렵다고 들었는데.

더 어렵습니다. 개보다 유통기한이 더 짧고,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혈액량도 적으며, 헌혈을 위해서는 전신마취도 해야 하죠. 안전하게 마취 후 채혈을 하기 위해서는 마취 전 검사도 필요합니다.

개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Q. 전혈을 제외한 동물혈액제제가 전부 동물용의약품으로 해석되면서, 2022년 말부터 사양 초유의 동물혈액 공급 중단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지금도 전혈 빼고는 판매가 안 되고 있습니다. 전혈의 경우에도 동물혈액은행에 연락하면 며칠 뒤에나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응급환자인데, 혈액 공급이 잘 안돼서 수혈을 못 받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동물 혈액제제 허가 및 제조품질관리기준 가이드라인 일부. 전혈을 제외한 혈액제제는 모두 동물용의약품으로 분류되어 판매를 하려면 제조업 및 제조품목허가를 받아야 한다.

Q.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혈을 제외한 농축적혈구, 혈장제제 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GMP시설을 갖추고 동물용의약품으로 품목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선진국에도 없는 과도한 규제라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해당 가이드라인을 다 맞추면 수혈 비용을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금액을 책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지켜야 할 조건이 많습니다.

노령동물이 늘어나고, 수의학이 발전하면서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혈액은 대체제가 없지 않나요? 정부 가이드라인을 보면, 보호자들이 수혈을 받을 때 경제적인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됩니다.

현재 정부는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혈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은 왜 보호자의 부담을 더 늘리는 쪽으로 정책을 펼치나요? 심지어 지난해 동물진료비 부가세가 대부분 면제됐음에도, 혈액은 여전히 과세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동물병원과 보호자들이 먼저 나서서 헌혈을 통해서 수혈이 필요한 동물들을 살리자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비현실적인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규제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백산동물병원에서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별도로 한국고양이헌혈센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혈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고양이 환자들이 헌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양이 헌혈 문화를 더 정착시켜서 수혈이 필요한 고양이 환자들이 수혈을 다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개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수술이나 치료도 고양이는 혈액이 부족해서 실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병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비영리법인으로 운영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서 고양이혈액센터를 별도로 개설했습니다.



Q. 한국고양이혈액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병원 이름이 ‘혈액센터’여서 혹시 공혈묘가 있는 곳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공혈묘는 당연히 없습니다. 

백산동물병원도 공혈묘를 둔 적이 없습니다.

현재 혈액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동물혈액 공급이 음성화되는 분위기가 보입니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는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헌혈을 통해 제대로 혈액을 확보하고 수혈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헌혈할 고양이가 센터에서 오면 검사 후 헌혈을 합니다. 그리고 수혈이 필요한 고양이 환자가 와서 수혈을 받게 됩니다. 모두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수혈이 필요한 모든 중환자, 노령묘가 이곳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추후에 혈액 공급을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Q. 헌혈과 수혈만 하는 동물병원인데, 엑스레이 검사실과 수술실이 있네요.

고양이 헌혈은 마취 후 진행됩니다. 따라서 엑스레이 촬영을 포함한 마취 전 검사를 다 해야 합니다. CBC, Chemistry, 아이덱스 SNAP Feline Triple 키트, NT-proBNP 검사를 시행합니다.

수술실은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공간입니다(응급 시 CPCR 시행).

저도 그렇고, 심지영 원장님도 저와 함께 백산동물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고양이 진료를 많이 했고, 백산동물병원 헌혈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고양이 헌혈·수혈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Q. 반려묘 수혈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헌혈 문화가 잘 정착된다면, 공혈동물을 통한 혈액공급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백산동물병원에서 오랫동안 고양이 헌혈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니 결국 n수의 문제더라고요. 헌혈에 참여하는 고양이가 많아지면, 공혈동물도 줄일 수 있고, 수혈 단가도 낮출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고양이 헌혈 및 수혈을 양성화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목표이고 지금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망하지 않고 부디 센터가 계속 운영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헌혈을 통해서 수혈이 필요한 모든 고양이 환자가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헌혈을 한 보호자께는 무료 건강검진과 고양이 펫보험 가입처럼 실질적인 리워드를 드리고,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바로 수혈을 받을 수 있게 도우면서, 고양이 헌혈 문화 정착을 위해서도 노력하겠습니다. 일종의 ‘공정무역 커피’라고나 할까요?

현재 가장 필요한 건 적극적인 헌혈 참여입니다. 고양이 보호자분들과 동물병원 원장님들께서 고양이 헌혈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기사 원문 링크 : https://www.dailyvet.co.kr/interview/219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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